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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제 738 호 공부에 관한 생각

  • 작성일 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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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60
김현지

공부에 관한 생각 



  어느 시대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점토판에도, 이집트 피라미드 내벽에도 쓰여 있다는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다느니, 생각이 없다느니 하는 문구는 기성세대의 이런 성향을 잘 보여준다. 일상에서 이 말들은 그저 자신들과 다른 세대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상투적인 표현인 경우가 많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흔한 오류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예의 없고 생각 없기로는 어른들도 젊은이들 못지않다. 

  그런데 생각이 없다는 말을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말로 바꾸면 젊은 사람들이 생각이 없다는 말에는 조금의 진실이 담겨 있기도 하다. 생각은 경험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생각은 대상 없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의 접촉을 통해 쌓여가는 것이다. 생각은 자아와 세계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도 성장한다. 따라서 특정 화제에 관해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면 그에 관한 생각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과 비교하면 1980년대 사람들은 페미니즘이나 동성애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모두 마초이거나 동성애 혐오자여서가 아니라, 그들이 페미니즘이나 동성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자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굳이 자신과 관계없는 일을 찾아서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별한 자극을 받거나 관심이 생겼을 때 비로소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요즘 학생들에게 남북통일에 관한 생각을 물으면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 젊은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 지금 젊은이들보다 많이 생각했다. 그 시대에는 이 문제가 중요한 생각의 주제였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우크라이나 전쟁이 왜 멈추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가 없으면 생각이 없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생각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활동을 흔히 공부라 부른다. 언어 영역은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과목이다. 수학과 철학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좋은 훈련이다. 사회과학 공부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는 생각 방법을 알려준다. 여기에는 수많은 지식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들 역시 생각의 기회를 넓히는 데 필요한 재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험도, 독서도, 실패도 인생의 공부라 부른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이런 공부의 원래 목표가 희석되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공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생각의 기회를 얻는 데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특별한 기능을 익히는 공부가 매우 중요하다. 물질화되고 세속화된 사회에서 혼자 신선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특히 학생들은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직업도 구해야 한다. 졸업 후에는 원하는 수입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평생 기계의 부속품처럼 살 수는 없다. 자기를 긍정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 없이 길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당장 급하지 않아 천대받는 경향이 있지만 생각의 능력을 키우는 공부는 언제나 중요하다. 

  생각하는 능력은 삶의 격을 높여준다. 격 있는 삶이란 자기 힘으로 설계해 가는 삶이다. 주변의 물리력이나 상투적인 사고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능력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할 수 있는 삶이다. 그런 삶을 위해서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함은 물론 필요할 때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편견에 갇히지 않고 작은 이익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모두 평생 공부를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