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2 호 ‘전업자녀’가 되고 싶은 청년들…심화되는 2030 ‘캥거루화’
▲캐릭터를 활용해 ‘전업자녀’를 패러디한 그림 (사진: https://myip.kr/pFgcD)
“나는 캥거루족으로 살고 싶어.”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SNS에서는 ‘캥’, ‘직캥’, ‘돌캥’ 같은 신조어가 일상처럼 사용된다. 과거 ‘캥거루족’이 경제적 실패나 독립의 지연을 의미했다면,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부모와 함께 사는 삶은 더 이상 숨겨야 할 선택이 아니라, 현실을 버티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전업자녀’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청년들의 삶의 방식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오늘날 청년들은 왜 독립 대신 ‘집에 남는 선택’을 하고 있을까.
800만 ‘캥거루’, 늦어지는 독립
이른바 ‘캥거루족’은 부모와 함께 거주하며 경제적으로 일정 부분 의존하는 청년층을 의미한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백수캥’, ‘직캥’, ‘돌캥’ 등으로 나뉜다. 취업을 준비 중이거나, 직장을 다니면서도 독립하지 못한 경우, 혹은 가족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까지 포함된다.
‘캥거루화’는 이미 하나의 사회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한경비즈니스 취재에 따르면, 사회경제학자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부모와 동거하는 2040대를 최대 800만 명 규모로 추산한다. 청년층 상당수가 독립을 미루고 가족과의 동거를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2020년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25~29세의 약 80%, 30대 초반의 절반 이상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통계가 6년 전 수치임을 고려하면, 현재 비중은 이보다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업난·주거비…청년을 붙잡는 구조
배경에는 취업난과 급격한 주거비 상승이 자리한다. 2026년 2월 기준 일자리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은 약 116만 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구직 활동 없이 ‘그냥 쉬었다’고 답한 청년은 48만5000명으로 10년 전보다 두 배 증가했다. 30·40대까지 포함하면 ‘쉬었음’ 상태의 인구는 100만 명에 육박한다. 안정적인 소득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립은 점점 더 어려운 선택이 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대학생들에게 자취는 월세와 생활비 부담이 큰 선택이다. 졸업 이후에도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독립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우리 학교 재학생 A 씨(글로벌경영학과, 22학번)는 “월세만 해도 부담인데, 취업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나갈 이유를 못 느낀다”며, “가능하면 최대한 늦게 독립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인 사회초년생들에게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2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이직 준비에 나선 김성주 씨(가명, 30세)는 최근 부모와 동거를 선택했다. 그는 “이직을 위해 퇴사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사라졌고, 결국 자취방을 정리하게 됐다”며 “당분간은 결혼이나 독립보다 소득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생활비 부담을 줄이고, 그만큼 재취업 준비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전업자녀’의 등장, 역할을 가진 동거
▲‘전업자녀’를 주제로 브이로그를 찍는 청년들 (사진: 유튜브 캡처)
최근에는 ‘캥거루족’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유튜브와 SNS에서는 ‘홈프로텍터’, ‘전업자녀’, ‘캥 브이로그’ 등이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전업자녀’는 ‘직업 대신 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가사와 심부름, 돌봄 등을 전담하는 자녀’를 의미하는 신조어로,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공유하는 일상은 단순한 ‘무위도식’과는 거리가 있다. 정해진 시간에 기상해 집을 청소하고, 부모의 식단을 관리하며, 장보기와 분리수거 등 가계 운영을 책임지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출퇴근 장소만 집일 뿐,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노동자’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전업주부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이러한 생활은 영구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유예된 독립’의 성격을 띤다. 영상 속에서는 이력서를 작성하거나 자격증을 준비하는 모습, ‘번아웃 회복 기간’이라는 설명도 함께 등장한다. 치열한 취업 경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의미다.
여전한 비판과 정책 사각지대
그러나 비판적 시선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이를 경제적 미성숙이나 과도한 의존으로 바라보며 청년들의 자립 의지를 문제 삼는다. 장기화될 경우 경제적 자립이 지연되고, 부모의 노후 부담이 커지며, 사회적 관계망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회 진출이 늦어질수록 경력 단절로 이어져 취업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청년 정책 역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구 합산 소득 기준으로 인해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를 돌보는 ‘돌캥’의 경우, 가족 간병을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하고 수당이나 경력 인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청년 지원 움직임 필요
한편, 청년들의 사회 진입을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학교는 ‘일자리첫걸음보장센터’ 운영 대학으로 선정돼 취업 준비 단계에 있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청년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개별 프로그램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청년들의 ‘캥거루화’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이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취업, 주거, 복지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전업자녀’라는 이름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청년들이 독립하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왜 집에 머무르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집을 떠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이윤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