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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사회

제 762 호 거지맵에서 라우드 버지팅까지…고물가 속 ‘절약을 공유하는 시대’

  • 작성일 202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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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472
이은민

   올해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를 기록했다. 수치만 보면 안정적인 흐름으로 보인다. 그러나 체감 물가는 사뭇 다르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 가격은 어느새 3,800원을 훌쩍 넘었고, 자취방 월세 역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외식비는 1년 새 7.4%나 올랐으며, 청년 1인 가구의 월 생활비는 213만 원을 넘어섰다. 통계상 물가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매달 빠듯하게 생활비를 꾸려가는 대학생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그러자 청년들 사이에서는 절약을 둘러싼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만 원 이하 식당 정보를 공유하는 ‘거지맵’을 비롯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소비 내역을 함께 기록하는 ‘거지방’, 나아가 자신의 절약 목표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라우드 버지팅’까지 다양한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절약은 더 이상 혼자 감내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고 참여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거지맵, 대학가를 파고들다


    ‘거지맵’은 만 원 이하의 저렴한 식당 정보를 사용자들이 직접 지도에 등록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누구나 식당 이름, 가격대, 메뉴 정보를 올릴 수 있고, 방문자들이 후기를 추가하며 데이터가 쌓이는 구조다. 이름이 다소 자조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 서비스의 방향은 명확하다. “어디서 합리적으로 한 끼를 먹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주는 것이다.


  ‘거지맵’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현실이 그만큼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외식비가 1년 새 7%대로 오르고, 학교 앞 식당에서 평범한 한 끼를 먹으려 해도 만 원을 훌쩍 넘기는 일이 잦아졌다. ‘거지맵’은 이런 상황에서 발품 팔지 않고도 근처 저렴한 식당을 바로 찾을 수 있다는 이점을 제공한다. 대학생뿐 아니라 점심 값을 아끼려는 직장인들도 즐겨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거지맵’ 속 ‘한잎’ 식당 설명(사진: ‘거지맵’), 식당 ‘한잎’ 전경 (출처: 김건우 수습기자)


   직접 ‘거지맵’을 열고 상명대 서울캠퍼스 인근을 검색해봤다. 검색 결과 가운데 가장 눈에 띈 곳은 학교와 가장 가까운 식당 ‘한잎’이었다. 메뉴판에는 스테이크를 비롯한 다양한 양식 메뉴가 포함돼 있었지만, 대부분 가격은 6,500원을 넘지 않았다. 눈길을 끈 것은 가격뿐만이 아니었다. 실제 제공된 음식의 양은 넉넉히 잡아도 3인분을 웃도는 수준으로, 가격 대비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


  해당 식당을 통해 ‘거지맵’이 단순히 ‘저렴한 음식’을 찾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물론, 점심 식사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직장인들까지 폭넓은 이용자에게 부담 없는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절약이 곧 손해라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 ‘거지맵’ 안에 존재했다.


소비를 공유하고 통제하는 공간, ‘거지방’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사이에서 절약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하는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거지방’이다. 2024년을 기점으로 확산된 이 오픈채팅방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소비 내역을 공개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일종의 절약 커뮤니티다.


  본 기자가 실제로 채팅방에 들어가 보니, 입장한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대학생인데 일주일 생활비를 5만 원 안으로 맞추고 싶다”는 고민이 올라왔다. 이에 대해 곧바로 식비를 줄이는 방법, 대학생 할인 방법 등 다양한 절약 방법이 댓글처럼 이어졌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거지 탈출하는 그날까지”, “무지출 챌린지” 등 재치 있는 이름의 방들이 다수 개설되어 있으며, 많게는 1,000명 이상의 이용자가 참여하는 곳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지방’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사진: 카카오톡 캡처 이미지)


    이 공간의 특징은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서로의 소비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데 있다. 이용자들은 닉네임 옆에 월 지출과 목표 금액을 함께 표시하며 자신의 소비 습관을 드러낸다. 과소비에는 유쾌한 지적이, 절약에는 공감과 응원이 이어지며 일종의 집단적 규범이 형성된다.


  또한 SNS에서는 ‘무지출 챌린지’가 함께 확산되며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도시락을 직접 준비하거나 무료 쿠폰을 활용하는 등 지출을 최소화하는 일상이 콘텐츠로 공유되고, 이를 통해 성취감과 동기부여를 얻는 방식이다.


당당한 절약, ‘라우드 버지팅’


    이러한 절약 문화는 최근 ‘라우드 버지팅(Loud Budgeting)’이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라우드 버지팅은 자신의 예산과 소비 기준을 주변에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방식의 소비 관리다. 조용히 아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돈을 아껴서 더 중요한 곳에 쓰겠다”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과거의 소비 문화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한때는 ‘플렉스’나 ‘조용한 럭셔리’처럼 소비를 통해 경제력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 트렌드였다면, 이제는 오히려 소비를 줄이는 태도 자체가 하나의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는 대신 산책을 선택하거나, 가성비 식당을 찾는 방식으로 지출을 줄인다. 이렇게 아낀 비용은 교환학생, 해외연수, 여행 등 보다 큰 목표를 위해 사용된다. 즉, 소비를 줄이는 행위는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선택이 된다.


절약을 넘어 ‘생존 전략’으로


    결국 ‘거지맵’과 ‘거지방’, ‘라우드 버지팅’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고물가 시대를 버티기 위한 청년 세대의 현실적 대응이다. 이들에게 절약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한 전략이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경제력을 드러냈다면, 이제는 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시대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의 소비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절약은 더 이상 숨겨야 할 습관이 아니라, 공유하고 드러낼수록 강화되는 새로운 문화가 되고 있다.



이윤진 기자, 김건우 수습기자